[이민 108주년 기념 특별연재]하와이 한인이 애용한 조국 상징물 (2) -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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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01월26일 00시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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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로 보내기페이스북으로 보내기미투데이로 보내기 [이민 108주년 기념 특별연재]하와이 한인이 애용한 조국 상징물 (2)

2) 이민 초기의 단체 사진 중 태극기가 들어 있는 가장 오래된 사진은 고종황제의 1907년 만수성절 (8월 18일)에 오아후 섬 에바 사탕수수농장 한인마을의 한인들이 모여서 찍은 것이다 (사진 아래). 
대형 태극기 2개가 휘날리고 있다. 멀리서도 황제의 탄신일을 잊지 않은 한인이었다. 
한인들은 마을에 정착하면서 곧 동회(洞會)를 조직하고 동장을 두어 마을의 질서를 유지하였는데, 마을이 함께 만수성절을 지킨 것이다.
한인들은 마을의 질서를 유지하는 동회 이외에 동포의 생활향상을 위하여 1903년 가을에 신민회(新民會)를 조직하였다. 
신민회를 효시로 하와이에 친목회, 공진회, 전흥협회, 국민동맹회, 의성회, 자강회, 협성회, 공동회 등 많은 단체가 여러 섬에 조직되었고, 또 지부가 설립되었다. 
1907년 8월 말에 24개 단체와 동회 대표자 30명이 호놀룰루에 모여 5일간의 연속 회의를 가졌다. 
을사늑약 (1905년 11월)이 체결된 지 2년이 된 때였다. 이들은 9월 2일에 모든 단체의 힘을 합쳐 조국 국권 회복, 재류 동표의 안녕보장과 재류 동포의 교육 장려를 도모하는 목적으로 기존의 모든 단체를 해체하고, 한인합성협회를 조직하였다. 
하와이의 첫 통합단체가 탄생한 것이었고, 합성협회는 회관을 빌리는 등 통합된 단체의 모습을 갖추었다. 그리고 협회 탄생과 회관 마련을 기념하면서 찍은 사진 (사진 위)에서  태극기와 미국 성조기가 함께 결려 있음을 볼 수 있다. 
아마도 태극기와 성조기가 함께 계양된 첫 모임으로 하와이 이민 5년 만에 이루어 졌다. 미국 영토에 있는 한인 즉 코리언 아메리칸 이라는 것을 자각하고 표시한 것이다. 
한편, 미주 본토에서는 1903년 9월에 안창호가 샌프란시스코에서 여러 지도자들과 함께 한인들의 친목을 도모하기 위하여 친목회를 조직하였다. 1905년 4월에 친목회를 확장 개편하여 공립협회를 조직했으며, 샌프란시스코를 중심으로 로스앤젤스 등 6개 지역에 지방회(지부)를 설립하였다.
하와이와 미주 본토에서 독자적으로 활동하던 합성협회와 공립협회는 1909년 2월 1일에 정식으로 통합하여 국민회를 조직하였다. 4,500여명의 하와이 한인과 460여명 밖에 되지 않는 미주 본토의 한인 인구를 대표하여 이 두 단체가 통합된 것이다. 
국민회를 조직하면서 선포된 발기문의 요지는 ‘국권을 회복하기 위하여 국민이 통일 단합해야 하는데, 우선 미주 동포가 단합하고, 일본에 있는 동포, 러시아에 있는 동포, 그리고 서북간도에 있는 동포가 합동하고, 나아가 2천만 동포가 단합해야 한다. 그래야만 독립과 자유룰 회복할 수 있다’ 는 것이었다.
 1909년에 찍은 하와이 국민회 임원들의 단체사진에서도 대형 태극기와 성조기를 볼 수 있다. 또한 국민회가 1909년 순종황제의 탄신일 건원절 (3월 25일) 행사를 치루고 찍은 국민회 임원 사진에서도 태극기와 성조기를 볼 수 있다  
또한 태극기는 교회와 학교 사진에서 빠지지 않는다. 하와이에서 감리교 예배는 이민 첫 두 배가 도착하면서부터 농장 근처에서 시작되어, 1910년 말에 여러 섬, 여러 농장에 18개의 한인감리교회가 조직되었으며, 한인 인구의 약 1/4인 약 1,100명이 감리교 교인이었다. 한국에서 장로교를 다녔어도, 하와이에는 장로교 교파가 없었기 때문에, 감리교회에 출석하였다. 
1908년에 조직된 하와이 섬의 파팔로아 감리교회 교인들이 교회 앞에서 찍은 기념사진에서 대형 태극기를 볼 수 있다. 
또한 1911년에 설립된  카우아이 섬 신흥소학교 (한글학교) 학생들의 사진에서도 대형 태극기를 볼 수 있다. 하와이에서 한글을 가르치기 위한 첫 한글학교는 1907년 4월 하와이 섬의 힐로 한인감리교회에서 시작되었다. 
이후 한때는 24개의 한글학교가 각 섬의 농장 마을에 있었다. 대부분이 교회 건물을 사용하면서, 이른바 “영어학교” 방과 후 혹은 주말에 학생들에게 한글을 가르쳤다. 1928년을 정점으로 학생 수가 줄어들었고, 따라서 학교 수도 감소하였다. 일본 통치하에 있는 조국에서 일본 정부가 발행한 교과서를 사용하지 않고 학생들에게 조국을 알리고자 호놀룰루에서 교과서를 발간하여 사용하였다. 
국민회가 1911년, 1917년 그리고 1923년에 국어독본 등 교과서를 출간하여 사용하였다. 한글학교 학생들의 사진 이외에, 1919년에 한인 소년으로만 결성된 소년단 (보이 스카웃)의 단원들이 성조기와 태극기를 들고 사진을 찍었다.
 
<다음주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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