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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02월15일 00시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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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로 보내기페이스북으로 보내기미투데이로 보내기 이덕희 연구원이 전하는 하와이 대한인국민회 100년 발자취 (마지막회)


 
공교롭게도 1914년은 사탕관세 인상과 파인애플 가격 추락으로 하와이의 경제사정이 악화되기 시작하여, 농장 노동자들의 수입이 반으로 줄었고 실직 사태도 일어났다. 
더구나 1913년 후반부터 한인 사회에는 여러 가지 큰 사업이 시도되었다. 한 사업은 1914년 7월에 한인중앙학교 교장 이승만이 중앙학교에 받아드리기 시작한 여학생을 위하여 푸우누이(Puunui) 지역에 기숙사를 새로 구입한 것이며, 다른 사업은 8월 30일에 『국민보』사장이며 주필인 박용만이 카할루우(Kahaluu)의 아후이마누(Ahuimanu)농장에 대조선 국민군단 영문(營門)을 건축한 것이다. 
이 두 사업 모두가 1년 기간에 한인의 성금으로 이루어졌다. 따라서 이들 사업에 뒤이어 추진된 총회관 건축기금 모집은 활발히 이루어지지 않았고, 1914년 1월 말까지 총회관 건축기금으로 모금·적립된 액수는 $2,200 이었다. 국민회는 기금이 좀 더 모아지기를 기다렸다가 마침내 1914년 12월 9일에 1306 Miller Lane의 5,682 스퀘아 피트의 부지에 $5,200을 들여 2층 건물을 짓고 총회관 낙성식을 갖게 되었다. 
태극기와 성조기로 장식된 회관 낙성식에 정원명(전 총회장), 홍치범(목사), 박상하(전 총회장), 박용만(『국민보』사장), 이승만(중앙학교 교장), 김종학(총회장), 신홍균(목사), 한인부인회대표, 이한용(학생) 등이 식순에 참여하였고, 외부 인사로는 중국어 신문 Liberty News를 대표하여 Quan Ching과 미국인 친지 Riley Allen과 M. B. Henshaw가 축사를 했으며, 하와이영토 지사 핑컴(Lucius E. Pinkham: 1913-1918 재임)과 하와이 감리교선교부 와드맨(John Wadman) 감리사의 축하 편지가 낭독되었다. 
국민회는 이 회관에서 1946년까지 조국 국권회복을 위한 정치활동을 이끌어 간 것은 물론, 국민보를 계속 발간하였고, 연로해가는 동포들을 위한 복지활동도 이어갔다. 하와이 영토 토목국이 1945년 10월 5일에 영토 총독 관저 확장을 위하여 31년이 된 총회관을 $20,567에 매입하겠다는 ‘우호적인 몰수’ 통지를 보내왔다. 
국민회는 전권위원회를 구성한 후 하와이 정부와 교섭하여 1946년 7월 17일에 $28,794로 인상된 가격으로 총회관을 하와이 정부에 매각하였다. 
그 후 새 회관 자리를 물색하다가 9월 1일에 12에이커 부지의 구 폴투갈 영사관저 (2756 Rooke Avenue)를 $80,000에 구입하였다. 국민회는 비샵은행(Bishop National Bank of Hawaii: First Hawaiian Bank의 전신)에서 $45,000을 융자 받고, 국민회 호상부에서 $5,300을 빌리고, 또 나머지 모자라는 액수는 국민회 경상비에서 충당하였다. 
은행 융자금은 곧 넓은 부지를 분할하여 10 택지를 만들어 판매한 총 $45,000의 수입으로 갚았다. 
이민 온 지 40여년이 되면서 회원으로부터 성금을 더 받지 않고도 새로 이사한 국민회관 구입 재정을 해결할 수 있었다.
국민회 회원들은 조국의 해방 이후 새로 옮겨간 국민회 총회관에서 사회활동과 조국 구제활동에 주력하게 되었다. 
그러나 생존하는 초기 이민자들이 20명 미만이었고 또 고령으로 활동을 자유롭게 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총회관의 방들을 임대하고 그 수입으로 건물을 관리하고 유지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2세들은 국민회 활동에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 이상 인력을 동원할 수가 없는 상태에서 총회관은 계속 쇠퇴하였다. 그러다가 1970년부터 새 이민자들이 도착하여 총회관을 사교적인 모임의 장소로 사용하게 되었으나, 건물 관리는 여전히 문제로 남았다. 
1990년부터는 건물 사용도 뜸하게 되었고 1990년대 중반부터 초기 이민자들의 2세 회원 몇 명이 국민회의 명맥을 이어갔다. 국민회는 드디어 2002년 1월 17일에 한국에 본부를 둔 사립 독립문화재단에 총회관을 55만 달러에 매각하였다. 
국민회가 조직된 지 약 5년 만에 어려운 경제상항에서 한인들의 성금으로 마련할 수 있었던 총회관이 약 90년이 지난 후에 더 이상 필요 없게 된 것이다.  
국민회는 그 조직을 국민회재단으로 바꾸고, 초기 이민의 2세와 3세인 4명의 이사들이 매각기금의 이자 수입을 장학금과 한인사회를 위한 활동 후원금으로 사용하는 책임을 맡고 있다.
 
<사진설명:  “1914년 1306 Miller Lane의 국민회 총회관”
“1947년 2756 Rooke Ave. 국민회 총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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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 (koreatimeshawaii@gmail.com)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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