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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08월11일 07시4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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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로 보내기페이스북으로 보내기미투데이로 보내기 광복 73주년 기념 특집 <하와이 애국단의 발자취를 돌아 본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독립운동에는 하와이 애국단의 독립자금 지원이 큰 역할"
► 올리브연합감리교회 데이빗 김 원로 목사 특별 인터뷰

데이빗 김 원로목사


1932년 4월 29일 홍커우 공원에서 일본 수뇌부들을 섬멸한 윤봉길 의사의 물통 폭탄이 가난한 하와이 이민자들의 독립자금으로 만들어진 것을 아는 동포는 전무한 실정이다. 
윤봉길 의사의 위대한 업적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국무령인 김구가 주도했던 한인애국단의 피와 땀이 서려있다. 하지만 한인애국단으로 독립자금을 지원한 8인의 비밀결사조직 하와이 애국단은 역사의 뒤안길에 묻히고 말았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일까? 조국의 독립을 위해 작렬하는 태양 아래에서도 가슴에 품은 애국의 마음을 불태웠던 그들의 역사는 왜 잊혀져 가고 있을까?
73주년 광복절의 의의를 더하기 위해 하와이 애국단의 활동 무대였던 올리브연합감리교회의 원로목사인 데이비드 김(한국명 김창환) 목사를 통해 하와이애국단의 숭고한 희생의 발자취를 돌아 본다.
<편집자주>

올리브연합감리교회에서 보관하고 있는 카우아이 사탕수수밭 이민자 양귀환, 전이학 부부와 부부가 기증한 독립자금 기부 증서들. 이들은 임시정부 설립 이전부터 하와이 국민회 및 부인회 등 독립 단체들을 통해 당시 엄청난 액수의 독립 자금을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와이 애국단은 어떤 조직인가?
 
임성우, 김경옥, 김예준, 김성옥, 현도명, 김태정, 김형기, 김기순으로 구성된 8인의 조직이 만들어질 당시 하와이는 지금의 하와이보다도 훨씬 복잡하고 혼란스럽던 시기였다. 국민회와 동지회가 갈라지면서 폭력이 난무하던 시절 그들과 다르게 조용히 활동하고자 아무도 모르는 비밀결사를 조직하게 된다. 
 
그들이 하와이애국단이고 김구선생의 ‘백범일지’에 자세히 적혀있는 내용대로 1931년 11월 그들이 마련해 상해임시정부로 보내온 독립자금 1,000달러가 이봉창/윤봉길 의사의 의거를 성공적으로 이끄는 성과를 거두게 됐다. 
 
이들의 노력을 인정 받아 8명중 2명, 임성우(건국훈장 독립장), 현도명(건국훈장 애족장)은 독립유공자로 추대됐지만 나머지 6명은 아직까지 제대로 된 인정도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번에 광복절 특집으로 만들어진 ‘EBS 다큐프라임 '역사의 빛 청년’이란 프로그램을 통해 하와이 애국단의 업적을 새롭게 조명하게 됐는데 그 동안 후손들이 없어 찾지 못했던 분들 중 ‘김예준’씨의 후손을 찾을 수 있게 되어 하와이에서 촬영하는 것을 도와줬다. 이번 기회에 김예준씨 역시 독립 유공자로 인정받아 훈장을 받게 되길 바란다.

 
* 당시 이들 모두가 올리브연합감리교회에서 활동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떻게 독립자금을 모금했는지?
 
그들의 주 활동무대였던 올리브연합감리교회는 지난 1907년 와히아와 농장의 한인 노동자들이 모여 예전 올리브 에비뉴에 만들어졌던 교회로 111년의 역사를 가진 하와이 이민역사의 한 축을 담당하는 교회다. 올리브연합감리교인들이었던 하와이 애국단은 비밀조직을 결성해 교회내에서 활동을 했었다.
 
이들 8명의 명단을 보면 모두 일반인으로 목사는 없었다. 그분들의 자손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자신의 아버지가 나무 그늘아래 몇몇 사람들과 모여 교제를 하는 줄 알았다고 하고, 가끔 둘둘 말린 돈뭉치를 집 침대 밑에 숨기는 것을 보기도 했다고 한다. 이를 보면 그분들께서 얼마나 조직적으로 가족이나 친지, 교인들도 모르게 비밀리에 활동을 하셨는지 알 수 있다.
 
이들 모두는 이민 1세대로 사탕수수밭의 노동자들이었다.
당시 사탕수수 농장의 품삯은 남자는 시간당 7~8전(센트) 한달 15원(달러)였고, 여자는 시간당 4전(센트)이었다.

그렇게 10시간 넘게 2미터 가까이 되는 사탕수수나무의 잎을 잘라내고 베어내면서 잎에 온 몸이 긁히고 베여 상처로 고통 받으면서도 한달 월급 전부를 독립자금으로 내어놓을 만큼 나라를 위해 얼마나 많은 공헌을 한 것인지 알 수 있다.
 
1903년 갤릭호를 타고 하와이에 첫발을 내디뎠던 이들은 1910년대에는 사탕수수 농장을 떠나 약 70%가 본토로 이주했고 남았던 이들은 얼마 되지도 않던 월급을 모아 사업을 하기 시작했는데, 모아 놓은 돈이 없으니 몸으로 하는 일을 할 수 밖에 없어서 대부분 와히아와 인근 스코필드 군부대지역 또는 호놀룰루에서 구두수선, 세탁, 이발 등을 하며 돈을 모았다. 
 
애국단이 활동했던 1930년대는 이미 호놀룰루나 스코필드 지역에서 그들만의 사업을 하거나 개인 농장을 운영하던 시기로 그렇게 모은 자금이 대한민국임시정부로 보내지게 된 것이다.


 
* 하와이 애국단은 이후 어떤 활동들을 했나?
 
윤봉길 의사의 폭탄 투하가 성공하자 하와이 애국단의 활동이 알려지게 되면서 이 비밀조직은 정식으로 애국단의 이름을 가지고 하와이 사회에서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한때 회원 45명까지 성장했다.

당시 혼란했던 시기만큼 수많은 단체들이 하와이에서 활동하고 있었는데 하와이 애국단도 다른 단체와 합쳐지고 없어지기를 반복하다 마지막에는 국민회와 동지회만이 남게 된다. 
 
일본이 2차 대전에서 미국에게 패하면서 대한민국이 독립하게 되었다고들 말하는데, 물론 그 말이 맞는 말이지만 8.15 광복절즈음 준비했던 대한민국 임시정부 광복군의 국내 진압작전이 수포로 돌아가 스스로의 힘으로 조국의 광복을 맞지 못한 비통한 마음을 나타내셨던 김구 선생의 안타까움 속에는 세계 각지에서 독립을 얻고자 목숨을 바치고 희생했던 우리 선조들의 피와 땀이 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독립을 하게 됐다고 생각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
 
지난 6월 문재인 대통령은 현충일 추념사를 통해 나라를 위해 헌신했던 독립운동가들의 희생을 기억하고 존경하는 마음으로 진정한 예우를 해 나가는 것이 보훈이라고 밝혔듯이 우리는 역사의 한 페이지를 기록한 순국선열들의 희생이 인정받을 수 있도록 관심을 가져야 한다.

내년 2019년 3월 1일은 독립선언을 한지 100년이 되는 해이다. 미국의 독립기념일인 7월 4일은 1776년 독립선언서가 선포된 날로 올해로 242년이 된다.
같은 맥락에서 본다면 대한민국의 독립은 2019년 100주년이 된다고 보는 것이 맞지 않을까 생각된다. 
 
3.1 운동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었고 임시정부는 국내에서는 일제의 탄압에 의해 활동하지 못해 중국 상하이에 위치를 두고 정부로서의 활동을 해왔으니 대한민국의 시작은 1919년이 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은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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