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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03월26일 00시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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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로 보내기페이스북으로 보내기미투데이로 보내기 이덕희 이민사 연구가, 이승만 탄신 106주년 기념 연재
<태평양잡지>에 실린 이승만박사의 글

이승만 박사 (이하 이승만)는 1913년 2월 3일 호놀룰루에 도착하였다.  1939년 11월 17일 미주 본토로 이사하였다가 1945년 10월 귀국할 때까지 약 25년간 하와이에서 활동하였다. 물론 중간에 미 본토와 중국, 유럽 등지로 여행하였으나, 33년간에 걸친 그의 미국 망명생활의 본거지는 하와이였다. 그는 1913년 가을 학기부터 한인기숙학교 교장으로, 1915년에는 한인여학원 교장으로, 그리고 1918년에는 한인기독학원의 설립자로 20여년간 교육자로 활동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저술과 출판활동을 꾸준히 계속하였다.
그는 한인기숙학교 교장이 되기 전에 《한국교회핍박》을 집필/출간하였고, 잠시 한인 감리교회의 월간지《포와한인교보》의 출판을 책임졌었다. 동시에 1913년 9월부터  월간지인 《태평양잡지》를 출간하였고, 1930년 12월부터는 이 잡지를 《태평양주보》로 개제하여 출판하였다. 그는 이들 잡지의 출판 경비를 조달하면서, 어려운 재정여건 때문에 여러 차례 출판사를 옮기면서 활자구입 등 출판에 관련된 모든 책임을 졌다. 이런 와중에 그는 끊임없이 글을 썼는데, 어떤 때는 손수 지도까지 그려가며 글을 발표하였다. 그는 여러 나라의 역사와 정세를 소개하였는데, 특히 일본과 한국간의 관계를 자세히 분석한 글을 썼다. 이 글들은 그가 1904년 한성(서울)감옥에서 쓴 《독립정신》과 하와이에서 쓴  《한국교회 핍박》의 연속이었고, 민주정치를 실현하기 위한 대중교육의 일환이었다. 그는 교육 없이 민주정치가 이루어질 수 없다고 믿었고, 교육과 정치를 따로 생각하지 않았다.  
  《태평양잡지》는 700부가 인쇄되었는데 (1924년 기준), 하와이에 450부, 미국본토 130부, 쿠바와 멕시코 30부, 상해, 남경, 북경, 만주를 포함한 중국 50부, 영국과 독일에 30부 등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한인에게 배포되었다. 
안타깝게도 《태평양잡지》 대부분은 산실되었다. 현존하는 19개호에 실린 많은 글 중에서 1913년과 1914년에 발표한 5편을 발췌하여 소개한다.
그의 문체를 그대로 간직하면서 맞춤법만  약간 수정하여 네 번에 나누어 연재한다.  이 글들을 통하여 100년 전 이승만이 어떻게 새로운 대한의 건국을 준비하였는가를 엿볼 수 있기 바란다. 

<내치자주>, 1913년 11월 (1권 3호)
영어로 홈 룰(home rule)이란 내 집안일을 내가 자유로 다스려서 남의 간섭을 받지 않는다는 뜻이니, 번역하면 내치자유권이라. 이 명사를 보통 자치권리에도 쓰지만, 특별히 영국의 속방으로 있는 아이얼랜드(Ireland)의 정치상 운동을 지목함이니, 이는 영국에 주권을 빼앗긴 아이얼랜드 백성들이 내치를 자주하게 하자는 주의로 여러 백 년 동안 강경한 운동을 많이 일으킨 연고라.
 일본이 연전에 조선을 합병할 때에 세상에 광포한 말이 우리가 조선을 합병하는 것은 미국이 필립핀을 관할한 것이나 영국이 아이얼랜드를 관할한 것과 같다 하였는데, 이는 잠시 남의 역사를 빌려다가 자기들에게 유익하도록 인증하고자 함이라.
 우리는 [다른 나라의 일을] 소상히 보아서 알아야 이 중에서 스스로 배우는 것이 생겨서 우리도 어찌하는 것이 좋을 것인지 앞길을 예비할지라.
1155년에 영국왕 헨리 2세와 로마 교황 핸드레인(Handrain)이 이 [아이얼랜드] 땅에서 세를 받아서 얼마를 교황에게로 부치라하고 아이얼랜드를 영국에 주었나니, 이때는 교황의 지위가 각국제왕 위에 거한다하여 구라파 각국이 교황의 권리를 숭배할 때라.
 1801년에 소수의 아이얼랜드 사람들이 국회를 파산하고, 영국 국회에 속하도록 하는 영국 합병운동을 일으켰는데, 이것은 송병준과 그의 일진회가 한국을 일본에 합병시키려고 한 것과 같은 것이라. (옮긴이 밑줄) 그 후 1834년에 홈룰 정책의 운동이 시작되었고, 1871년에는 홈룰 정당이 생겨났다. 드디어 1885년에 영국 수상 글래드스톤(William Gladstone)이 영국의 아이얼랜드 합병을 무시하고, 아이얼랜드의 자주를 허락하여 아이얼랜드 수도에 국회를 따로 세우고 영국 여왕 밑에서 내치하는 자주 국가를 허락하자는 연설을 하였나니, 이 연설이 글래드스톤 평생의 유명한 연설 중 하나이더라.   지금 세상에서 약한 나라와 강한 나라가 권리를 다툴 때에 전쟁과 주먹의 힘도 길러야 하려니와 학문으로 사람의 지식을 발달하여 세상 사람에게 저의 억울함과 남의 무리함을 설명할 줄 알아서 세상의 공론을 얻어가지고 기회를 타서 일하는 것이 더욱 긴급한지라.
지금 한인의 학식이 자치 권리를 주장할 만치 되어가지고 자치운동을 행하여 세상의 공론을 돌려놓을진대, 일본 주권자들이 병력으로 세상의 이목을 영영 가릴 수 없을지라. 이렇게 만들어 놓으면 일본 주권자들이 저의 이해를 비교하여 우리 한인의 자치운동을 도와서 일하기를 영국 총상이 아이얼랜드의 자치당파를 위하여 일한 것 같이 하지 말라는 대가 없을지라.
여러 백년을 두고 이렇게 강경한 운동을 행하여 널리 동정을 얻어놓고도 [아이얼랜드가] 아직까지 완전히 성공치 못함은 다름이 아니고 그 나라 안에 백성들이 합동하지 못한 연고라.

<사진설명: 3월26일 탄신일을 맞아 한인기독교회 이승만 박사 동상에 레이가 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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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 (koreatimeshawaii@gmail.com)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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