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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11월07일 00시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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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2014 미주 한인이민100주년 이후 11년, 하와이 한인사회 '변화'

2003년 미주한인이민100주년기념 사업을 계기로 하와이는 한국을 비롯한 지구촌 한민족에게 명실상부 '미주한인 이민종가'로 새롭게 부각되었다. 100여년간 역사의 무관심 속에 묻혀 있던 사탕수수 농장 이민선조들의 고단했던 삶의 여정과 그들의 속깊은 조국애가 세상 속으로 드러나며 하와이 한인사회는 미주한인사회 자부심이 되었고 오늘을 살고 있는 대한민국 내 다문화 가정이 지향해야 할 삶의 모델이 되고 있다. 111년의 이민 역사의 풍랑을 헤치고 새로운 이민 200년 역사를 만들어 가고 있는 하와이 한인사회의 변화를 돌아보며 새로운 역사의 물줄기를 진단해 보는 시간을 가져 본다.
<한국언론진흥재단 후원>
 
<사진설명: 코나 한인사회 울타리를 조성하고 있는 주역들. 김교문 목사, 최상호 사장, 김창학 회장부부, 코나 열방대학 프로그램 디렉터 이지훈 목사(오른쪽부터)>
 
하와이 주 군도 가운데 가장 큰 면적을 자랑하는 빅 아일랜드 하와이 섬은 미국 대륙의 기질과 하와이 원주민의 역사 그리고 하와이 천혜의 자연 자원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매력적인 곳이다.
빅 아일랜드는 인구 19만명 정도로 힐로와 와이메아 그리고 코나 지역 크게 나뉜다.
하와이 카운티 시 청사가 있는 힐로 지역은 비가 많이 오고 농업이 주요 산업으로 하와이대학교 힐로 캠퍼스가 위치한 곳이다.
빅 아일랜드 힐로지역은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세운 한인기독교회와 숯 가마터 그리고 미주한인이민100주년기념사업에 즈음해 설립된 하와이 한인이민 선조를 기리는 추모비가 힐로 다운타운에서 멀지 않은 곳에 바다를 내려다 보고 자리한 알라에 공동 묘역에 자리하고 있다.
한국의 제천에서 나오는 검은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이 조형물은 1996년 당시 뉴욕에서 활동하다 힐로로 이주했던 이병용 화백이 앞장 서 건립한 것으로 미주한인이민100주년기념사업회를 비롯한 한인사회와 이 화백의 인연이 닿은 한국 미술계 인사들의 동참으로 드라마틱하게 건립사업이 전개되었다.
이 화백은 당시 마치 이 추모비를 세우기 위해 힐로로 이주한 듯 불과 몇 년 사이 열정적으로 추모비 조성사업을 전개했다.
그리고 추모비 건립을 성공적으로 마친 후 홀연히 세상을 하직해 당시 한국의 미술계는 물론 하와이 현지 미술인들의 애도가 이어졌었다. 
그러나 11년이 지나서도 이 추모비를 찾는 사람들은 그가 추모비에 쏟아 부은 예술가로서의 마지막 열정을 느끼게 된다. 
힐로 한인사회도 11년 전이나 지금이나 큰 변화가 없다.
1987년부터 힐로에서 거주하며 한인사회 민원을 챙기고 있는 지미 윤 (사진 위) 한인회장은 “힐로 코나 지역 한인 인구는 500명 남짓(이 가운데 코나는 100여명) 추산되며 예나 지금이나 크게 변한 것이 없다”며 그러나 100주년 기념사업이후 불고 있는 한류의 영향으로 관광은 물론 힐로 캠퍼스와 학술교류도 늘어교환 학생으로 힐로를 찾는 한국 대학생들의 숫자가 매년 증가하고 있다고 전한다. 코나 지역은 유동인구가 많은 반면 힐로 지역은 대부분 거주민들이라고 설명한다.
윤 회장은 “힐로의 경우 한동안 생강 농사가 번창해 이주 한인들이 많았지만 생강 농사가 큰 재미를 보지 못해 많은 한인들이 타지로 이주했다”며 현재 “자연농법으로 양돈업을 하고 있는 강신목씨가 지역사회 주목을 받고 있다”고 전한다. 실제 강씨가 사육하고 돼지 사육장에서는 특유의 냄새가 없는 친환경 분위기로 주지사도 이곳을 방문한 적이 있다고 해 돼지고기에 대해 특별한 애정을 갖고 있는 하와이 주민들의 정서를 반영한 힐로 유망산업으로 육성 가능성을 예감케 한다.
윤 회장은 120년의 역사를 바라보는 힐로 한인사회 발전을 위해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숯 가마터 복원사업은 이어지길 바란다고 전했다.
매년 인하대 총동창회 관계자들이 찾고 있지만 지난 10여년간 진척되는 일이 없어 안타깝다는 것.
마우이 한인사회에 비해 힐로는 특별히 한인들이 한 자리하는 특별한 행사가그리없다고 한다. 그러나 내년부터는 힐로 캠퍼스에도 한국어 학과가 개설되어 학생들의 한국어 학습 열기에 힘입어 한국전통 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것으로 예상했다.
 
 
<코나 커피와 함께 헤쳐 모이고 있는 한인사회>
<사진설명: 9월부터 11월 코나축제가 열리는 코나커피 농장지역은 일손이 분주한 달이다. 
커피가 익어가는 계절이기 때문이다. 코나커피 농장 가운데 유일하게 일반인들에게 커피재배 및 제조 과정을 개방하고 있는  '코나 헤이븐' 농장도 커피수확이 한창이다.>
 
힐로 한인사회가 지극히 개인적인 모양새를 보이고 있다면 거주 인구 100여명에 불과한 코나 지역은 코나커피 농장을 중심으로 헤쳐 모여 작업을 하고 있다.
1903년 초기 이민선조들이 사탕수수농장을 터전으로 한인 이민사회 터전을 일구었다면 111년이 지난 코나 지역은 코나커피 농장을 터전으로 코나 한인사회 울타리를 조성해 가고 있다.
하와이 한인 이민선조들의 삶의 족적에는 나름대로 향기 진한 휴먼 스토리들이 담겨 있어 후손들의 마음을 촉촉하게 적시며 다시한번 아니 다시 찾아 정착하고 싶게 하는 진한 중독성이 내재해 있다.
유동인구에 비해 토박이 한인 인구가 100여명 내외인 이곳 코나에도 이런 중독성은 예외가 아니었다. 
텍사스에서 은퇴 후 거주지를 물색하기 위해 코나를 방문했던 김창학이란 경제인이 코나의 매력에 새롭게 눈을 뜨며 미주한인이민111년을 맞아 '코나 한인사회'라는 새로운 울타리 건설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코나 한인사회 조성작업은 김창학 회장이 6여년전 앞을 내다보고 조성한 ‘코나 헤이븐 ‘커피농장을 중심으로 정교하게 추진되고 있다.
그는 1971년 단돈 300달러를 들고 와 텍사스 리욘 카운티 유정개발과 정유시설 사업 후 휴스턴 쉐라튼 호텔을 운영하는 등 아메리칸 드림을 일군 경제인이다. 그는 자신의 선척적인 경제적 감각으로 독일계 후손의 코나 커피 농장을 인수해 일본인들의 텃세로 유명한 빅 아일랜드 코나커피 골든벨트지역에 한국 문화와 숨결이 담긴 커피 농장을 탄생시키기에 이른다.
김 회장은 코나에서 사탕수수농장 이민선조들의 방치된 무덤을 처음 본 순간 그들의 못다한 이야기들을 코나커피 속에 담아 후손들에게 들려주기로 했다고 한다. 이 같은 뿌리를 지키려는 김 회장의 ‘사명감과 이끌림’은 김교문 목사와 이곳에서 20여년 삶의 뿌리를 내린 최상호 사장의 마음을 움직여 이들이 중심되어 코나 한인사회 울타리 조성작업은 지난해부터 무섭게 가속을 내고 있다.
그 동력에는 미국 경제의 뿌리를 제대로 공부한 김창학 회장의 외아들 아브라함(사진)이 자리하고 있다. 
듀크대 MBA를 졸업한 아브라함은 망설임 없이 코나로 날아와 아버지의 사업에 터보 엔진을 달아 준다. 
김 회장이 코나 커피 농장을 본거지로 한인 경제기반 조성에 나서고,  2세인 아들은 미국 경제를 꿰뚫어 보는 경제적 혜안과 능숙한 영어와 친화력으로 텃세 강한 빅 
아일랜드 지역 유지와 농장주들의 협력을 이끌고 있다. 
그런가하면 월가가 주목하고 있는 빅 아일랜드 요소요소의 주요 벤처사업 투자 및  노른자 부동산 매입을 추진하고 있다.
코나 지역에서 20여년 자의반 타의반 한식 세계화에 앞장서 왔던 최상호 사장은 사업 동반자였던 부인이 자녀들이 살고 있는 샌프란시스코로 떠난 이후 코나커피 껍질을 이용한 항산화 물질 가공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김 회장 부자와 최 사장의 일련의 비즈니스 행보는 코나를 잠시 머물다 떠나는 유목민의 사회에서 커피농장을 매개한 정착지로 변화시키기 위함이다. 이에 더해 교회도 힘을 보태며 코나 한인사회 울타리는 견고하게 다져가고 있는 것이다.
김교문 목사(코나한인선교교회)는 코나커피 비즈니스의 시작이 선교사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라는데 주목하며 본인 스스로도 코나에 잠시 머물다 갈 생각이었지만 코나 농장속에 방치된 이민선조들의 묘역을 찾은 이후 이젠 이곳에 정착하기로 결심하게 됐다고 속내를 전한다. 
그리고 다음 세대를 위해 뭔가 준비를 하는 마음이 생기게 되었고 차세대는 물론 다민족 사회 자녀들에게도 축복이 되는 영적인 고향이 되는 교회의 역할을 고민하게 되었다고 전한다.
코나 커피농장으로 현지 정착에 성공한 김 회장을 중심으로 교회와 더불어 미주한인이민 111주년에 이루어 지고 있는 코나 한인사회 울타리 조성은 오아후와 마우이 그리고 힐로 한인사회가 자연발생적인 커뮤니티라면 구체적인 도시계획에 이루어지고 있는 신도시와 같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그래서인지 미주한인 이민자들을 위한 ‘안식처’(haven) 로서의 역할도 부여되고 있어 미주한인이민 200년 역사 물줄기 속에서의 '코나 한인사회'의 역할에 관심이 모아진다.


(2) 한인 최초 미국내 카운티 시장직에 오른 빅 아일랜드 카운티 '해리 김' 전 시장
해리 김(76, 1939년생) 전 하와이 카운티 시장은 빅 아일랜드 케에아우 지역에서 사탕수수농장에 이민 온 선친이 사진신부를 만나 이룬 가정에서 9남매 가운데 막내로 태어났다. 올라아 스쿨과 힐로 고등학교를 졸업, 하와이주립대 힐로 캠퍼스와 서던 오레곤 대학에서 학위를 이수했다. 미 육군에 입대해 간호병으로 복무했고 이후 교사와 운동부 코치로 활동했다. 16년간 빅 아일랜드 민방위 본부장으로 근무했다.  
2000년에는 빅 아일랜드 하와이 카운티 시장선거에 출마해 당선됐고 2004년 재임에 성공해 2008년까지 시장으로 재직했다. 김 전 시장은 선거운동 당시 지지자들의 기부금을 1인당 10달러로 제한해 ‘돈 없는 선거’를 이끌어 전 미주지역에서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시장직 은퇴 후 아직도 여러 단체나 기관에서 협조와 자문을 요청해 오고 있어 여전히 분주한 해리 김 전시장도 미주한인이민 100주년기념사업 성공 개최 이후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새롭게 확인하며 발전하고 있는 조국에 대해 무한한 자긍심을 표하고 있다.
특히 그는 화산활동이 왕성한 빅 아일랜드 주민들에게는 여전히 자신들의 안전을 책임져 주는 든든한 민방위 본부장으로서 영원히 기억될 것으로 여겨진다.
시장으로 재직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로 모국인 한국을 방문한 것이었다고 회고 한다. 한국계 미국인으로써 전쟁의 참화 속에서도 그 짧은 시간 동안에 눈부신 발전을 해 온 모국이 무척 자랑스러웠고 그러한 성장의 원동력을 하와이에도 전해질 수 있도록 양 지역간의 가장 이상적인 형태의 교류는 사람을 근간으로 하는 인적자원의 교류라고 생각해 대한항공의 빅 아일랜드 취항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기도 했다. 
김 전 시장은 사진신부 모친을 통해 한국 여성의 강인함과 가족을 위한 희생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오뚜기와 같은 삶의 자세를 배웠다고 회고한다. 
일제에 의해 나라를 빼앗긴 채 먼 이국에 와서 남편까지 일찍 여의어 의지할 곳이라고는 어린 자식들 밖에 없는 한 여성이 살아남기 위해 힐로에서 ‘케아아우 김치’라는 브랜드로 김치공장을 하셨다. 김치 세계화의 시동을 건 셈이다.
그 이전에는 온 가족이 모여 하와이 전통의 돗자리를 만드는 일을 하다가 형제들이 다들 본토로 유학이나 직장을 얻기 위해 떠나버린 이후에는 일손이 부족해 결국 막내아들과 가장 적은 자본으로도 할 수 있는 일을 찾은 것인데 김치가 꽤나 잘 팔려서 미 본토의 업자가 접촉을 해 왔고 발음이 어려운 ‘케아아우’라는 브랜드 대신 ‘해리 김 김치’로 브랜드로 캘리포니아에서 뉴욕에까지 미 전역에 팔리게 된 사연을 전한다. 김 전시장은 1980년대까지 김치사업을 계속했다. 하와이대학 힐로 캠퍼스에 입학한 이후에도 밤낮을 가리지 않고 어머니와 김치를 만들었고 동네의 일본인 상점에 납품하기 위해 이웃의 일본인 할머니들로부터 일본어를 배우기도 했다.
나중에는 한번 주문에 24병들이 상자로 500상자씩 미 본토에 수출하면서 가정형편이 많이 나아졌다. 김 전 시장이 가장 후회하는 것은 그가 16살 때 돌아가신 선친이  얼마나 자신에게 소중한 사람이었는지를 한번도 직접 말하지 못한 것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2003년 이민 100주년 이후 많은 사람들이 김 전시장을 찾았고 그에게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전했다. 이에 김 전시장은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그러나 해리 김은 이민 100주년 이전이나 이후에도 변함없는 한결 같은 사람이다”며 부인과 함께 웃는다. 힐로의 경우 이민100주년 이후 한인사회가 크게 달라진 것이 없지만 한류 드라마 열기로 인해 한국의 발전상이 많이 알려져 있어 자신이 시장 재임시 추진했지만 불발에 그친 대한항공의 빅 아일랜드에 취항이 성사될 것을 간절하게 바라고 있었다. 
이민 200년을 준비하는 후손들에게 김 전시장은 자신이 있기까지 부모님과 조부모님, 그리고 조상들이 어떠한 노력을 해 왔는지를 깨닫게 된다면 한인혈통이란 사실에 크게 자랑스러움을 느낄 것이라며 .내가 힐로의 고등학교에서 20여 년간 미식축구 감독을 맡으면서 몇 안 되는 한국학생들과 나의 자녀들, 그리고 손자손녀들에게 강조한 것은 한국인이란 사실에 긍지를 갖고 부모님과 자신들이 살아갈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 준 선조들에게 감사하며 살아가라는 것이었다.
 
<사진설명: 은퇴 후에도 여전히 지역사회 대소사로 분주한 생활을 하고 있는 해리 김 부부>
 
<사진설명: 김교문 목사가 일본인 소유의 코나커피농장 부지에 방치되어 있는 이민조상 묘지 앞에서 비문을 확인하고 있다.>

<사진설명: 빅 아일랜드 힐로 알라에 공동묘지에 서 있는 '한국이민조상기념비'와 한인 묘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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